안광숙 시인,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
‘멸치 똥’으로 당선…“하루 종일 시 생각해”

[뉴스사천=고해린 기자]

2019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시 부문에 안광숙(47) 씨가 ‘멸치 똥’이란 작품으로 당선했다. 사천에 거주하는 안 시인은 현재 마루문학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토지문학제 문학상 시 부문에는 160건에 899편의 작품이 경쟁했다. 단풍이 제법 물든 25일, 안 시인을 만나 수상 소감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들었다. 

▲ 안광숙 시인.

#시 부문 당선을 축하드린다. 수상 소감은?
=이번 달은 너무 정신없이 흘러갔다. 열심히 시를 쓰라는 의미로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가족들과 박종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신기한 경험인데, 계속 시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내 시의 문제점이 돋보기로 확대한 것처럼 눈에 확 들어오더라. ‘멸치 똥’이란 시는 올 겨울에 쓴 시다. 명절선물세트로 들어온 멸치를 식탁 위에 펼쳐 놓고 까다가, 이것도 한 생명의 죽음이고 시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멸치도 한때는 바닷속에서 우리와 같은 한 생(生)을 누렸을 텐데... 거기서부터 착안해 시를 쓰게 됐다. 

#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시를 좋아했다. 그땐 이해인 시인의 시를 흠모해서, 세례명을 ‘클라우디아’라고 따라 지을 정도였다.(하하) 대학 다닐 때도 동아리 활동을 잠깐 하다가, 어떤 계기로 펜을 놓고 살았다. 결혼 이후엔 먹고 사느라 바빴고.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의 ‘무언가’가 파문을 일으켰다. 마음이 힘들고 절실해, 단지 법당에 잠금장치가 없다는 이유로 절에 가서 기도를 했다. ‘부처님,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세요’하고. 그때 ‘시(詩)’가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시를 쓰는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원래 근성이 있는 편이다. 하루 종일 시에 미친 사람처럼 시를 쓰지 않을 때도 시를 생각한다. 처음 시를 쓸 땐 한 달에 100편을 쓴 적도 있다.(하하) 시를 쓰며 나의 정체성을 되찾았다. 힘들었던 경험, 내면의 외로움, 공허함, 뜨거움... 그 모든 게 다 글을 쓰기 위한 발판이 됐다. 시를 쓰고 나서 경험한 건데,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똑같은 상황도, 풍경도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시가 죽어가는 나를 살렸다고 말할 정도로, 이제 내 인생에서 목숨 걸고 할 수 있는 건 ‘시 쓰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계속해서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 또 시로 승부하는 사람이라면 뼛속까지 시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는 정통 서정시부터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시까지 ‘잡식성’으로 써왔다. 앞으로 어떤 경향의 시를 쓰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독자와 소통할 수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쓰는 게 목표다.

 

<평사리 문학대상 시 부문 당선작>

멸치 똥 / 안광숙

멸치 똥을 깐다
변비 앓은 채로 죽어 할 이야기 막힌

삶보다 긴 주검이 달라붙은 멸치를 염습하면
방부제 없이
잘 건조된 완벽한 미라 한 구
내게 말을 걸어온다
바다의 비밀을 까발려줄까 삶은 쓰고
생땀보다 짜다는 걸 미리 알려줄까, 까맣게 윤기 나는 멸치 똥

죽은 바다와
살아있는 멸치의 꼬리지느러미에 새긴
섬세한 증언
까맣게 속 탄 말들 뜬눈으로 말라 우북우북 쌓인다

오동나무를 흉내 낸 종이관 속에 오래 들어 있다가
사람들에게 팔려온
누군가의 입맛이 된 주검
소금기를 떠난 적이 없는
가슴을 모두 도려낸 멸치들 육수에 풍덩 빠져
한때 뜨거웠던 시절을 우려낸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뼈를 남기고
객사한 미련들은 집을 떠나온 지 얼마만인가

잘 비운 주검 하나 끓이면
우러나는 파도는 더욱 진한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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