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화.

추위가 채 가기도 전에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며 봄을 여는 나무가 있다. 이름만으로도 기분 좋은 ‘풍년화’가 바로 주인공이다. 구겨진 노란색 한지를 가늘게 찢어놓은 듯한 꽃잎은 이게 꽃인가 싶어 한번 더 살펴보게 할 만큼 독특한 모양새다. 보통 2월 중순이면 피기 시작하는 풍년화지만 올해는 더 빨리 피었다. 지구 온난화가 원인인 것 같아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꽃망울을 하나둘씩 터뜨리며 도르르 말린 꽃잎을 펼치고 있는 풍년화가 더없이 반갑다. 풍성하고 탐스럽게 피어나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하여 ‘봄의 전령사’라는 애칭도 얻었다.

풍년화(hamamelis japonica)는 일본 원산으로 중부 이남에서 심어 기르는 낙엽성 떨기나무이다. 우리나라는 1930년경 지금의 서울 홍릉 산림과학원에 처음 가져다 심은 이후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주로 정원의 꽃나무로 심겨 졌다. 봄기운 머금은 풍년화가 피면 겨울도 저 멀리 물러난다고 믿고픈 사람들이 안마당에 심어 꽃을 즐겼으리라. 풍년화는 일본식 한자 표기로는 ‘만작(滿作)’이라 한다. 봄에 일찍 꽃이 소담스럽게 피면 풍년이 든다고 하여 풍작을 뜻하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만작(滿作)’을 살짝 우리식으로 바꿔 붙인 이름이 ‘풍년화’이다. 풍년화가 일찍 피었으니 올해도 풍년들겠지.

풍년화 크기는 5~10m까지 자라고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은 2~3월에, 열매는 10월에 익으며 달걀모양이다. 키가 큰 풍년화는 묵은 잎을 달고 있으며, 가지 끝에는 지난해 달린 열매가 달려 있기도 하다. 꽃잎 사이에는 작은 꽃받침이 있고, 안쪽은 붉은색을 띤다. 풍년화 종류에는 크게 5~6종이 있다. 노란색의 꽃이 피는 인본산 풍년화가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꽃색이 좀더 진한 ‘중국풍년화’, 꽃과 잎이 같이 피는 ‘미국풍년화’ 그리고 풍년화보다 더 크게 자라는 ‘모리스풍년화’ 등이 있다. 특히 미국풍년화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귀중한 약재로 이용되었다. 줄기를 삶거나 쪄서 진액을 뽑아내어 근육통, 상처, 벌레 물린데를 비롯하여 폐렴과 종양치료까지 널리 이용했다고 전한다.

풍년화는 매우 훌륭한 정원용 식물이다. 풍성하게 피어나는 꽃의 화사함도 좋지만 은은한 향기도 매우 좋다. 아담한 크기에 개성적인 수형을 갖추고 있어 작은 정원에 포인트로 심어도 제격이다. 또한 풍년화는 그늘에서 버티는 힘도 좋아 어디든 잘 자란다. 이른 봄 아이들에게 풍년화 꽃을 자세히 살펴보게 한 후에 무엇처럼 보이냐고 물으면, “제기 만들 때 종이 찢어놓은 것 같아요”, “파마한 엄마 머리 닮았어요”라는 아이들의 답이 돌아온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말 오후 정동 들녘을 따라 가다보니 정월대보름 행사를 위해 달집을 세우고 있었다. 음력 새해의 첫 보름은 우리의 대표적인 세시명절의 하나로 전통적인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마을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즘이야 풍년이 든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닌게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때에 제값 받는 풍년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활활 타오르는 달집에 빌어보련다. 풍년화처럼 농사도 대풍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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