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좌관심(홀로앉아 마음을 보다) 25×30. 2019.

어깨근육이 아파왔다. 막상 혼자서 떠나려 하니 두려움으로 온 몸이 긴장된다. 목적지도 없고 기한도 정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 즉흥적으로 심장이 닿는 곳에 운전대를 오롯이 맡겨 보고 싶었다. 침낭을 싣고 평상시 눈 여겨 보지 않았던 도로 위 초록색 표지판만 의지하며 이 곳을 벗어났다. 

 “마음 울적할 날에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라디오에서 1990년대 즐겨 듣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때부터였다. 이상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야할까.......여기가 어디쯤일까....... 지도를 펼쳐 어디를 손가락으로 짚어도 맞아 줄 지인들이 있었고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길 위에 홀로 서보니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 낯선 대도시 8차선도 한가하기만 한 자정, 빌딩 창문에 불빛이 간간이 보이고 건물의 외관을 빛내주는 네온만 화려한데 내가 선뜻 들어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귀소본능이라 했다. 다니던 학교 주변에 차를 세웠다. 대학축제 때 맥주반잔을 마시고 구토를 심하게 했던 담벼락 내리막길 이곳에 중년의 나이를 짊어지고 돌아온 그 소녀가 차를 주차하고 노숙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통굽 신고 통바지로 바닥을 쓸고 다니던 바로 그 소녀가 보였다.

눈을 감고 있으려니 그대로의 낡아버린 건물들 앞에서 그 시절 보낸 청춘이 생각난다. 새벽에 간혹 또각또각 소리에 눈을 뜨니, 오래전 나와 비슷한 소녀가 책을 한 아름 안고 새벽 골목길을 지나간다. 삼삼오오 남학생들은 새벽에도 친구들이 좋은 시절이었다.

새벽이 깊어질수록 셀프고독이 되어 섬 안에 갇혀버린 절대고독이 몰려왔다. 누군가는 이 감정을 벌써 알아채 버렸는지 이런 여행은 할 수 없으리라 장담했다. 그럴 리 없다 큰소리 치고 떠나온 길이였기에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낯선 도시 담벼락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그냥 돌아 오시소. 모른 척 할 테니깐” 카톡 문자가 나를 괴롭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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