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빠지다. 25×30. 2019.

음식이 들어가면 잠시 동안 멈칫!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점점 번져오는 고통이 뺨 위를 지나 머리까지 새하얗게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과 식사자리에서 인상을 찌푸린 채 어떤 말조차도 할 수 없었다.

“제가 지금 치통이.......화가 나서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니 오해 하시지 마셔요” 그렇게 되면 온통 화제는 치통의 고통으로 돌려진다. 월나라 미인 서시가 치통으로 인상을 찡그리고 다닌 것을 마을 여자들이 따라 했다던 그 일화를 사람들에게 얘기해가며 나의 치통이 그리 대단하지 않은 고대부터도, 미인도 겪어왔던 아픔이라고 농을 하며 잠시 오는 고통쯤으로 넘겨 버렸다. 음식을 선택할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횟수를 줄여야만 했다. 또다시 찾아 올 치통을 생각하면 겁부터 덜컥 났다. 깊숙한 내 안의 사랑니 때문이었다.

찡그리는 미운 얼굴을 더 이상 보여 주기가 싫어 비장한 각오로 예약을 하고 치과 의자에 앉아 마취를 해 발치 하는 순간까지 10여분 정도. 피가 흥건한 붕대 솜을 꽉 깨물고는 1시간 정도를 지나 조심스럽게 훅 뱉어낸다.

앓던 이 빠진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다. 뭔가 허전하게 비어 있는 듯 남아있지 않은 고통의 시간. 혀를 굴려가며 신기한 듯 말아보니 민둥산처럼 느껴지는 고통의 흔적. 무엇이 불안한지 혀를 천천히 굴려가며 남아 있는 치아의 숫자를 세고 있다. 겨우 하나 그 자리에서 사라졌을 뿐인데....... 나의 온 몸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앓던 건 치아였는데 머릿속까지 맑아진다. 신경질적으로 대하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약속장소를 정하고, 한쪽으로 밀어 놓았던 군것질거리들을 보란 듯이 펼쳐 놓았다. 도무지 집중 할 수 없어 미뤄왔던 일들을 하나둘 서둘렀더니 이젠 제법 속도가 붙는다. 앓던 이 빠졌다는 이런 기분이었다. 온통 신경을 곤두 세웠던 촉을 해제 시키니 사라진 식욕이 가장 먼저 나를 반긴다.

또 다른 상한 이 있다기에 치료를 하려 사흘 만에 다시 치과를 찾았다. 이번엔 반대쪽 사랑니란다. 오늘 또 다시 발치를 해야만 했다. 이건 해도 너무 하는 게 아닌가. 며칠사이 내 입 안에 사랑자 붙은 녀석들은 다 사라져 버리는구나. 할 수 없지, 이젠 어금니 콱 깨물고 긴 인생 살아 보는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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