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나무

나무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절은 겨울이 아닐까? 잎, 열매 모두 떨어뜨리고 줄기와 잔가지만을 드러내며 서있는 겨울나무. 나무 전체의 모양을 수형(樹形)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겨울나무는 수형이 볼품없고, 앙상하다. 그러나 줄기를 곧추세우고, 가지를 하늘을 향해 뻗치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당당해 보이는 수형의 나무가 있다. 하얀 눈을 배경으로 줄지어 숲을 이루고 있다면? 그 당당한 주인공은 바로 자작나무이다. 하얀 수피가 아름다워 숲속의 귀족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무이다. 다만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는 만나기 힘든 나무라 아쉬움이 크다.

며칠 전 숲친(숲을 사랑하는 친구들)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에 가자고. 해마다 이맘때면 나의 숲친들은 열일 제치고 자작나무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간다.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 강원도 인제군 원대리에 있다. 숲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숨멎하게 만드는 곳이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조림이 시작되었고, 2012년 스무살 청년 즈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좀 멀기는 해도 핀란드의 하얀 자작나무 숲과 닮았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고, 영화 장면에서만 보았던 자작나무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나의 지인은 우스갯소리로 자작나무를 널리 알린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어느 과자회사의 껌이름인 ‘자일리톨’이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자일리톨에는 핀란드산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자일란’이라는 천연감미료가 원료로 사용되었다. 충치 예방에 효과가 있니 없니는 차치하더라도 휘바~휘바~를 외치며 자일리톨 껌 씹어본 사람들 많을 것이다.

자작나무는 껍질을 태우면 자작자작 하는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자작자작 불타는 소리만으로도 따뜻함이 전해지는 듯하다. 자작나무는 대개 추운 곳, 우리나라에서는 백두산을 비롯한 북부지방에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하얀 수피를 드러내고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백두산 자작나무 숲. 통일이 되면 가봐야 할 곳이 한곳 더 생겼다.

누가 뭐래도 자작나무의 가장 큰 매력은 종이처럼 벗겨지는 하얀 껍질(수피)에 있다. 껍질을 아예 종이 대신 쓰기도 했다. 자작나무 껍질에는 흰색의 기름기(밀랍)가 덮여있고, 불에 잘 타면서도 습기에 강하여 쓰임새가 많다. 또한 자작나무 목재는 아주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하며, 벌레가 잘 안 생기고 또 오래도록 변질되지 않아 건축재, 조각재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만들 때에도 자작나무가 사용되었고, 도산 서원에 있는 목판 재료 역시 자작나무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도 자작나무에 그려져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도 자작나무 목재는 비싼 편이다.

자작나무는 한자로 화(華), 또는 화(樺)라고 하는데 흔히 결혼식의 의미인 ‘화촉(華燭)을 밝힌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양초 대신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어둠을 밝히고 행복을 부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자작나무가 담고 있는 뜻이 사람들 사이에서도 널리 전해져 모두가 행복한 한해였으면 좋겠다. 날씨가 포근하니 금방이라도 봄이 올 것 같은 요즘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