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상(回想). 25×20. 2018.

“초등학교 때, 친구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 애가 항상 분홍소시지를 도시락 반찬으로 가져 오잖아. 그래서 그 친구랑 도시락 함께 먹으려고 친구 비위를 맞춰 줬었지. 난 그때부터 벌써 매우 계산적이었고 비굴한 것을 먼저 배워 버렸어요. 지금은 선생으로서 매우 반성해.”

함께 웃어 버렸다. 식사자리에서 선생님 한 분이 농담처럼 이렇게 던지는 말을 듣고 씨익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 분홍소시지가 너무도 먹고 싶었고, 내 단짝친구의 도시락에는 자주, 얇게 계란이 입혀진 분홍소시지와 소고기고추장이 담겨 있었다.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그 친구 아버지의 직업이 한없이 부러웠다. 분홍소시지는 교실 안에서 만큼은 부의 상징이었다. 아버지의 직업과 반찬의 퀄리티는 서로 비례한다고 어린 나이에 교실 안 서열을 단정 지어 버렸다. 

때문에 난 아침마다 반찬투정으로 엄마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아침상에 올라온 밑반찬들로 채워진 내 도시락. 고추장에 버무린 노란단무지가 너무도 싫었다. 때로는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투정도 하고 심지어는 반찬통을 엎어 버리기까지 했던 기억에,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내가 참 어려운 딸이었다 한다. 

어느 날부터, 도시락을 직접 싸겠다고 선언을 했고, 그 이후로 줄곧 군것질 대신 분홍소시지로 내 반찬통을 채운 기억이 있다. 학교를 공부하러 다닌 건지, 도시락 먹자고 다닌 건지. 그 당시는 왜 그리 허기가 느껴졌는지. 지금은 잘 챙겨 먹질 않는다고 걱정들이 많지만, 아마 지금 먹을 밥을 그때 분홍소시지로 다 먹은 듯하다.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는 분홍소시가 떨어지질 않는다. 요즘 세상에선 육질 좋은 햄도 많이 나오지만 나는 굳이 마트 진열대에서 분홍소시지로 먼저 손이 간다. 분홍소시지에 달걀을 묻혀 노릇노릇 구워 내는 부드러운 식감이 나는 좋았다. ‘초딩 입맛’이라고 사람들이 놀렸다. 그런 엄마 탓에 아들은 이유 없이 고급 소시지 맛을 보기도 전에 분홍소시지에 길들여졌고, 아들은 왜 우리 집 식탁에 매번 분홍소시지가 올라오고 있었는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이젠 급식으로 바뀌어 버린 세상이라 도시락 신공을 발휘할 기회는 오지 않는다. 간혹 초등학생 아들의 체험학습 때 자기보다 더 큰 피크닉 3단 도시락 가방을 매고 다니게 했던 웃고픈 일들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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