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완벽한 타인

▲ <완벽한 타인> 영화 포스터.

조금 거창하게 서두를 떼자면 <완벽한 타인>은 비밀에 관한 완벽하지 않은 물음이며, 부질없는 호기심에 관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헛발질이다. ‘부질없는’이라는 다소 시니컬한 수식의 근거는 정답도 없을뿐더러 각자 답을 내봐야 명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와 역사를 관통하며 이야깃거리가 된 것이 ‘타인의 비밀’에 관한 호기심이며 이것 때문에 개인은 신세를 망치거나, 나라 하나가 통째로 멸망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게 다 호기심-비밀에 관한 인간의 본성과 맞닿은 속성 때문인데, 무수히 많은 낭패의 역사를 지켜보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는 게 인간이란 존재다. 이렇다 보니 장르를 불문하고 지치지도 않고 소비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속사정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원작으로 하는 <완벽한 타인>은 이런 맥락에서 하나도 새로울 것 없는 소재이며 허탈한 결말과 더 상통하는 주제 또한 진부하고 맥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참 재미있다.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이야기를 주무르는 재주를 증명해 보인 감독의 연출도 좋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빛을 발한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영화의 기본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대원칙에 부합하는 만듦새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덕목이다. 거대 자본이 난무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배우의 힘, 대본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흥행으로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

너무나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각자 말 못할 ‘어른의 사정’을 핑계 삼는다. 그 사정은 “인생의 블랙박스”이자 현대인의 아이덴티티라고 불러도 반박하기 힘든 핸드폰에 담겨 있으니, 웃자고 시작한 일이 비극으로 치닫는 과정은 블랙코미디의 수순을 따라가지만 같은 영화인데 혼자 보면 코미디, 연인이 보면 호러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완벽한 타인과 관람하는 것이 좋다는 후기가 나오기도 한다.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인생은 희비극이다.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어 벌써 300만 관객을 돌파하고서도 아직까지 여력이 있다. 밀실과 봉인된 비밀의 해제라는 진부하지만 유효기간이 없는 소재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완벽한 타인>은 큰 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작은 영화의 생존방식에 관한 유의미한 예제다. 결국은 각본의 힘 아닌가. 알차고 단단한 시나리오의 개발과 투자에 공을 들여야 한다. 좋은 시나리오에서 좋고 나쁜 영화가 나올 수 있어도, 나쁜 시나리오에서는 절대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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