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자리 니자리. 30×25. 2018.

“남자의 완성은 시계와 향수예요!”
“아침부터 수작 부리지 마셔라!”
“엄마는 남자의 세계를 너무 모르시는구나.”
“나는 내 세계도 매일 매일이 오락가락인데, 남자의 세계까지 들여다 볼 취향은 절대 아니지.”
“엄마, 이 시계는 말이야......”
“아들, 그 시계 얼마주고 샀어?”
“역시 엄마도 여자긴 여자야. 얼마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간지 나는지를 한번 봐요. 태엽이 감기는 거야. 움직이면서. 수동이라 전자동에 비해 30만원은 더 비쌀 거야. 이제까지 돈밖에 모른다는 수모를 겪어가며 자금을 끌어 모아 이걸 산거야. 다이어트를 핑계로 저녁밥을 수없이 굶었어. 난 이 시계가 무척이나 갖고 싶었거든요.”

아들이 시계를 샀다. 가격을 더 이상 따져 물어보진 않았지만 전자동에 비해 30만원은 더 비싸다고 하니 ‘30만원은 훨씬 넘겠지’라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이 제법 큰돈을 들여 시계를 장만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움찔은 하였지만 ‘돈이 어디에서 났니. 왜 그리 비싼 것을 네 나이에 사느냐’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심장에서부터 이상한 전율이 올라 왔다. 이 감정은 도대체 뭘까.

어린 자식이었던 아들이 사내가 되어 내 앞에 서 있었다. 엄마가 바쁘게 성장하는 동안 아들도 저 혼자 저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 영역을 지키듯이, 남편의 영역을 지켜 주듯이, 이젠 아들의 영역을 만들어 주어야 할 때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말하기를 멈칫 한다는 것은 아들 나름 계산법대로의 상황이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이럴 때면 냉큼 저 대로를 인정해 주는 습성이 있는지라 묘한 거리감과 동시에 따뜻한 자신감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 집에선 두 사람의 영역만을 서로 지켜주면 되는 줄로만 알았다. 어느새  품안에서 관여할 수 있었던 아들에게도 저만의 영역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알고 싶어도 적당히 눈 감아 줄 수 있는 거리를 내가 익혀야만 한다.

아들의 손목에서 번쩍 거리는 시계를 볼 때마다 엄마가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을 알려 주고 있었다. 난 아마 평생 아들의 그 첫 시계의 값이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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