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生(날 생). 20×15. 2018.

함께 있으면 마음 칸이 채워지는 친구가 있다. 강산을 세 번씩이나 바뀌게 했던 우리는, 서로를 지켜보면서 서로의 나이를 세어 주며 어른이 되었다. 햇살이 유독 눈부시던 날, 창이 예쁜 찻집에 앉아 대견하게 살아내는 우리와 또 다른 그들의 삶을 이야기 한다. 대개가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그들의 뒷담화를 즐겨하곤 하였다. 그 주인공들은 내가 용기 내지 못하는 것을 대신 해 주었고, 때로는 그들을 몰래 훔쳐보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을 들먹이며 이야기 하다보면, 내가 사는 모습이 투영되기도 하고 슬픈 적막이 며칠 동안 나를 지배하기도 했다.

그날은 추석명절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은 탓에 화제가 가족으로 던져졌다. 친구는 결혼을 하고 정신없이 살다 이제 여유가 생겨 뒤돌아보니,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가족이 되어 있더란다. 모순도 보이고 차별도 보이는 불이익에 친구는 저항하기 보다는 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도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고 살면 돼” 

한참 인기 중인 TV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겉으론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은 주인공 김선균이 출가한 친구를 찾아가 했던 대사가 기억이 났단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는 자신의 삶에서 “난 망했다. 이번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자조적인 그의 대사가 우리의 테이블 위에서 난도질이 되었다. 꽤나 이성적인 친구는 자기와 맞지 않을 것만 같은 사람들 틈에서 같은 가족이라는 어색한 괄호 안에 넣어진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대변했다. 아닌 것 같다며, 다음 생에는 꼭 실수하지 않겠다며 웃는다. 

생각해 보니 난 이번 생도 다음 생도 똑같이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난 망해도 좋다. 남편과 자식이 그다지 내 삶을 좌지우지 한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학벌 좋고 훤칠한 뇌섹남을 원한다면 그런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부귀한 사람을 원한다면 그런 사람과 교류하면 된다고 여겼다. 이왕 이 생이 시작되어 버렸는데...... 근데 말이야, 그런 사람을 가까이에 두고 싶으면 대신 내가 엄청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쯤은 우리가 알 나이는 되었단 말이지!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