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병주 뉴스사천 발행인

최근 KAI(=한국항공우주산업㈜)가 신규 민간항공기 구조물 수주를 앞두고 고성군에 생산설비를 갖추려 한다는 이야기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KAI 측에 물으니 “아직 수주가 확정되지 않은 일로서 결정된 게 없다”는 반응이나, 관련 요로에 확인하니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다. 고성군이 사업부지를 저렴하게 제공하고, 거기에 KAI가 공장을 지어 새로운 항공구조물을 생산‧납품하겠다는 거다. “수주 단가가 워낙 낮아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고, 사천시로서는 당장 2만 평 정도의 산업부지를 제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부가적 설명이 달렸다.

사천시와 지역사회로선 참으로 불편한 얘기다. 누군가는 기업이 제 이익을 쫓아 어디에 공장을 짓고, 거기서 무엇을 생산하며, 그 상품을 얼마에 팔든지 지역사회가 간여할 바는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허나 ‘존중과 신뢰’라는 가치로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기업이 얼마든지 있거니와 회사 설립 이후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여기까지 달려온 KAI 또한 그런 기업이 되겠노라 외쳐왔기에, 오늘의 얘기가 더욱 씁쓸한 것이다. 문득 6년 전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다.

2012년 3월, KAI가 유럽의 항공기 제조업체 에어버스사와 최소 12억 달러(1조3488억 원) 규모의 납품계약을 맺었다. KAI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함께 기뻐하며 반겼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생산시설을 어디에 갖출 건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던 KAI가 결국 산청을 택했기 때문이다. 당시 KAI가 제시한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2014년부터 납품할 수 있도록 당장 공장을 지어야 하는데, 사천시는 그런 사업부지를 제공할 수 없다.’

어쩌면 맞는 말이었다. 25미터 트레일러의 진출입이 가능하면서 오폐수처리시설을 갖춘 2만 평 규모의 사업부지가 사천에 당장 준비돼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KAI의 설명은 점점 구차한 변명으로 사천지역민들에게 다가왔다. 산청 금서제2농공단지에 터를 잡기로 하고 계약 수주 전 단계부터 산청군과 긴밀히 접촉해 왔음이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가난한 지자체로부터 △공장부지 무상임대 △폐수처리시설 설치 △고속도로 연결도로 개설 △직원 복지시설 지원 △주차장 설치 등 파격적인 지원책도 받아놓은 상태였다. 사천시가 급히 머리를 짜내어 제시한 ‘종포 매립지’ 카드도 허사로 돌아갔다. 그해 8월, A320 날개공장 사업은 결국 산청으로 넘어 갔다.

돌이켜보면, A320 날개공장이 산청으로 간 데는 정치적 힘이 작용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고, 김홍경 전 사장은 일종의 ‘낙하산 인사’였다. 그리고 이 사업에 깊이 간여한 것으로 알려진 노아무개 부장은 산청군의원 출신으로서 2011년에 특별 채용된 친 여권 인물이었다. 산청군수 또한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이었다. 시간이 지나 새로이 취임한 하성용 KAI 전 사장이 이 일을 두고 “적절치 않은 일”로 지적한 것은 그 배경이 다분히 정치적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신규 사업 수주를 앞두고 이는 ‘KAI 고성 공장 신축’ 논란에서도 6년 전 그것과 오버랩 되는 대목이 여럿이다. 먼저 KAI는 ‘적절한 사업부지를 제때 공급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런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고성군과는 이미 교감을 이어왔을 가능성이 짙다. 고성군이 KAI의 신규 사업 수주 계획을 미리 알고 선제적으로 사업유치 제안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업제안 내용 또한 닮았다. 현재 조성 중인 이당일반산업단지를 올해 중으로 완공해 향후 10년간 저렴하게 제공하겠다는 거다. 뿐만 아니라 각종 복지시설 지원도 약속하는 모양새다. 공교롭게 정치적 환경도 흡사하다. 6년 전이 새누리당이었다면 지금은 민주당이 다른 점. KAI 김조원 사장이 민주당 출신인데다 문재인 대통령-김경수 경남지사-백두현 고성군수가 민주당으로 일맥상통이다.

물론 KAI로서는 그밖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6년 전 경험한 시행착오와 갈등, 배반감을 기억하는 사천시와 지역민들로서는 이번 사태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배경에 특별한 그 무엇이 있다면 더 더욱 지역사회에 먼저 알리고 이해를 구해야 했다. 그것이 지역사회와 상생하겠다는 기업의 ‘존중과 신뢰’의 자세가 아닐까. 지금이라도 그런 자세를 촉구한다.

발행인  하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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