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窓(창)’. 35×25. 2018.

익숙한 사진관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손님을 맞는 그녀의 분주함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유월의 어느 오후, 온 세상이 회색으로 몇 일째 젖어 있고, 건너편 낡은 간판이 을씨년스럽다. 그녀는 항상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오래전부터 그녀를 당산나무 같은 사람이라 생각을 하곤 했다. 잠시 고개를 돌려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니 가끔 그녀가 홀로 보았을 유리 너머 거리의 세상이 보인다. 

늘어 선 건물들은 연극무대의 뒤 배경 마냥 고정이 되어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달리는 차는 순간,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며 눈을 어지럽히곤 한다. 손주의 손을 잡고 느린 걸음으로 걷는 노인네의 무료함이 보인다. 아이를 안고 지나가다 진열대에 놓인 어느 집 가족사진을 보면서 갖은 표정을 지으며 아이와 눈을 맞추는 젊은 여자의 행복도 보였다. 간혹, 설레는 만남을 약속했는지 한 중년의 신사가 가던 걸음을 멈추어 창에 비친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모습도 보인다. 안에서 바라보는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삶과도 같은 일상이 유리 저 너머로 보였다. 이것은 그녀의 창이었다.

커다란 기계가 사람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토해낸다. 아름다운 저곳으로 누군가가 여행을 다녀왔나 보다. 그녀는 그들과 같이 그 곳을 상상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꽃을 좋아하는지, 바다를 좋아하는지, 등산을 즐기는지, 축구를 좋아하는지, 친구들을 좋아하는지를. 그녀는 한 컷의 사진 속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또 다른 그녀의 창을 가지고 있었다. 단골로 다니던 먹물 먹은 노신사의 발길이 끊기면 혹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졸여지고, 오며 가던 젊은 친구의 발길이 끊기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 어느 집 아들의 성공한 삶을 훗날 바람처럼 듣게 되었다. 

18년 전, 그녀의 카메라 렌즈 창 앞에서 아들의 백일을 함께 했다. 평범한 것에 익숙지 않았던 어린 엄마는 갓난아이를 옆구리에 차고 사진을 찍어댔으니 그녀는 그런 나를 기억했고 이후, 그녀의 창에 비친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아이는 이젠 도리어 사십대 중년의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청년이 되어간다. 한 아이의 성장을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는 자신의 희끗해지는 머리카락만큼 어쩜 그 어떤 철학자보다 더 깊은 사색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의 창은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필름의 길고도 깊은 창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다 놀이로 빠져나간 늘어지는 휴일 오후, 문 닫힌 가게들 사이로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그녀의 사진관은 수십 년째 그 자리에서 언제나 불을 밝힌다. 커피향이 있을 것 같은 수다스러운 테이블과 사람들을 맞이하는 하이톤의 그녀가 한 번씩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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