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지금 한창인 여름의 들녘에는 때마침 장마철을 맞아 비와 간간이 내려쬐는 햇빛을 양분으로 온갖 것들이 높이를 키우고 씨앗을 남기려고 몸부림이 한창이다. 이 몸부림은 인간으로 치면 경쟁이 되겠는데, 햇빛을 받지 못하고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경쟁에서 진 것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런 것을 자연도태(自然淘汰)라고 어느 생물학자는 말했던 것 같다. 인간의 농사란 어쩌면 이 자연스런 현상에 조화를 부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인간에게 필요한 작물에는 비료를 주는 등의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그 작물과 경쟁 상황에 있는 잡초라고 부르는 것들은 제거하는 것이다. 이 농사를 자연의 법칙, 그 자연도태에 거스른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자연을 잘 이용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결과로 인간 세상은 굶주림을 거의 면하게 된 것이 아닐까.

인간 사회는, 인간 자신이 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의 바탕 위에서, 이 자연을 이용하는 위와 같은 행로(行路)를 끊임없이 밟아왔다. 만약 우리 사회를 자연 상태에 그냥 두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온갖 폐해를 겪을 것이 뻔하다.

이 때, 약자의 설움을 자연도태라고 당연시해 버릴 수 있을까. 강자도 늙거나 힘을 뺐기면 한순간에 약자가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니, 강자와 약자의 구분 없이 모두 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당연한 과제이고, 그 일을 위해 인류는 노력해 오지 않았던가. 그 결과로 남은 것이 오늘의 사회다. 또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몸부림치는 과정에 있는 것도 오늘의 사회다. 그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그다지 높지 않은 모양이다. 헬조선이란 말도 나오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했다는 N포세대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결과로만 본다면 대한민국은 무척 살기 어려운 나라로 생각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옛날 우리 부형(父兄)들이 미국과 일본으로 또 유럽이며 심지어 중동에도 돈 벌러 갔듯이, 비공식적으로 이백만을 헤아리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다. 지금 제주도에서는 자기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예멘 난민들이 우리나라에서 살게 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우리는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일인당 3만 달러를 넘보고 있고 세계 10위에 근접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더해 근자에는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을 비관하여 ‘모두가 함께 못 살자는 것인가’라는, 이를테면 하향평등(下向平等)을 지향(志向)한다는, 자조 섞인 한탄을 공공연히 한다는 말도 들린다. 정말 천만의 말씀이다. 자기의 경제 사정이 나이지지 않는다고 해서, 자랑할 만한 직장을 못 가진다고 해서 스스로 자기가 속한 사회를, 그리고 평등의 가치를 그렇게 내려깎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 그 사회의 일원인 그 자신도 퇴보하는 행렬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역사는, 항상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원칙을 어느 시대에나 꿋꿋이 결국은 지켜왔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항상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의 유형무형의 희생을 바탕으로,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늘 지향해 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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