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삼천포여고 교장 / 시인

쾌청해야 할 4월 하늘이 황사, 미세먼지로 인해 흐리고 뿌옇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이 낯설고 새로운 풍경을 보면서, 안타깝고 씁쓸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가을날 들녘에 나가면 노란 개나리와 희거나 짙은 자주색 또 연분홍 빛깔을 띤 코스모스가 의좋게 함께 피어 있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말하지요. 쟤들이 미쳤다 미쳤어. 정작 누가 미친 걸까요. 말없이 계절을 읽는 쟤들이 미친 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미친 걸까요. 냉철하게 사고해야 할 난제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켜야 비로소 때늦은 후회를 하며 각성할지 깊은 시름에 빠집니다.

오늘 슬프고 거무스레한 4월의 하늘 아래에서 불안한 호흡을 하며, 우리 한국사에 나타난 4월이 내포한 의미를 헤아려 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 4월은 밝음보다는 어둡고 우울하다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와 닿습니다. 먼저 의미 있고 긍정적인 일들을 간략히 훑어본다면,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 건원중보 주조, 유길준의 『서유견문』 간행, 종합 교양지 『사상계』 창간(4.1) / 조영식 경희학원장 ‘간디 비폭력평화상’ 수상(4.3) / 최제우 동학 창시(4.5) / 서재필 「독립신문」 창간(4.7) / 최세진 『훈몽자회』 편찬(4.20) / 백정 권익 보호 단체인 형평사 발족(4.25) 등이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응어리진 근현대사의 굴곡진 굵직한 사건들이 뇌리를 짓누릅니다. 제주 민중 항쟁(4·3), 제암리 학살 사건(4.15), 세월호 침몰(4.16), 4·19혁명이 그렇습니다. 이 같은 여러 사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조명하고 검증, 연구하여 묻혔거나 왜곡한 진실을 밝혀 억울하고 부당함이 없는 민주 사회로 나아가는 근본이 되기를 진정 바랍니다.

어느덧 세월호 희생자 추모 4주기를 맞았습니다. 되짚고 되새겨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아 재발 방지 촉구가 헛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몸소 실천함이 따라야 하겠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역사를 진실을 통해 뉘우치고 사과하고 이를 관용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누구를 단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픈 과거사에 대한 자성과 용서로 새로이 하나가 된 모습으로 거듭 깨어나는 길만이 나라와 겨레의 밝은 앞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시인 T.S.엘리엇은 1922년 ‘황무지’라는 433행의 긴 시를 발표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학살로 황폐화된 유럽을 보고는, 현대 문명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면서 자신의 내면 독백을 통해 공허함과 외로움을 극복하고 부활과 평화에 대한 간절한 기대감과 구원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앞부분만 조금 음미하겠습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 잘 잊게 해 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 슈타른베르거호(湖)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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