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뭇 산들의 꼭대기>

▲ 「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젠 지음/ 은행나무 / 2017

문학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역할들 중 가장 원초적인 것을 꼽자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본능적이고도 실존적인 욕구의 충족이 아닐까.

민족의 삶을 작품에 대담하고 놀랍게 펼쳐내어 중국의 이야기꾼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쯔츠첸의 이 소설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뭇 산들의 꼭대기‘는 가상의 소도시 룽잔진을 배경으로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저마다의 운명을 살아가는 모습을 서정적이면서도 아주 재미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도살업자 신치짜, 수명을 점치며 비석을 새기는 난쟁이 안쉐얼,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경찰 안핑, 룽잔진 보건소에서 근무하며 장애인이 된 대학 친구를 돌보는 탕메이, 장례식장 염습사로 반신불수가 된 남편을 20년째 수발드는 리쑤전 등 개성 강한 인물들을 살아 숨 쉬는 듯 치밀하고도 독창적으로 묘사한다.

변방 작은 마을의 특유의 풍습이나 미신, 전설, 설화 또한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이야기에 몸을 맡기고 휩쓸려 가다보면 마치 옛 중국 마을에 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현대의 중국이 무대이다.

도시화와 환경 파괴, 사형 집행 방식의 변화와 장례제 개혁, 불임 수술, 사법기관의 가혹 행위, 불법 장기 매매, 영웅 만들기와 선전 선동, 참전 병사 대우 등과 관련한 역사 청산 문제뿐만 아니라, 죄악과 양심, 도덕과 인간 존엄성 등 현대 중국의 사회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미 문학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접하기 힘든 중국, 그 중에서도 소수 문화를 엿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이 책을 권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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