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영화 포스터.

1998년 일본문화개방으로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에서 위기감이 있었으나 한두 편을 제외하고 큰 영향은 없었다. 그러다 다시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던 게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괜찮다고 입소문난 일본영화가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빅히트 쳤다고 할 정도로 흥행몰이를 한 영화는 없으나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충분히 사랑을 받았다. 2004년에 개봉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당시 일본영화 열풍에 일조한 작품으로 이미 검증을 마친 정통 멜로극이다. 그 후 14년 만에 ‘소간지’라고 불리는 소지섭과 멜로영화의 여왕 손예진을 주인공으로 한국판이 완성됐으니, 검증된 작품에 검증된 배우가 참여해서일까, 연애세포가 되살아나는 한 편의 로맨틱코미디가 완성이 됐다. 읭? 정통멜로영화가 아니라 로맨틱코미디? 결말은 빼고 대충 그렇다.

(소설은 읽지 않았고) 일본영화만 기억하는 입장에서 일본판과 한국판 두 영화를 자연스레 한 자리에 놓고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원작의 감상 여부에 따라 느끼는 감상의 간극은 꽤 크다. 일본영화의 전형성을 띤 원작은 잔잔하게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반면에 한국판은 좌충우돌의 로맨틱코미디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나름대로 한국영화의 전형성을 드러낸다. 나라별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전개방식도 바뀌었다고 할 수 있으나,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그렇게까지 구분 지으려 애쓸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죽었던 사람이 되돌아왔다. 기억을 모두 잃은 채 말이다. 달리 생각해보면 공포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설정인데, 이런 불가해한 비현실을 참으로 예쁘게도 꾸몄다.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아름다운 동화 같기도 하다. 물론 강박처럼 자리 잡은 유머코드와 수시로 감정을 끊어가는 전개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겨울 지나고 내리는 반가운 봄비처럼 오랜만에 찾아온 멜로영화이기에 그저 좋기만 하다. 원작을 보지만 않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뻔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웃음이 빠지질 않으면서도 마침내 눈물짓게 만드는 감정의 진폭이 큰 한국형 로맨틱코미디의 공식이 마음에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얕은 감정을 한 겹씩 쌓아가는 일본원작에 훨씬 감동했던 이에게는 썩 와 닿지 않을 것이다. 한 방에 KO되는 것보다 누적된 잽이 훨씬 데미지가 큰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오랜 시간이 흐르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란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질 때면 물 먹은 솜처럼 마음을 적시던 일본 원작을 찾을 것 같다. 지금도 울컥하게 만드는 음악까지도 말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