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병주가 만난 사람] ⑮ 사천시도시재생총괄계획가 안재락 교수

옛 삼천포시 도시계획위원으로 시작한 인연
“‘도시가 성장하지 않는다’…도시재생의 출발”
“삼천포항, 충분히 매력…청널공원 눈에 띄어”

▲ 안재락 교수가 도시재생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말 삼천포 구항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 일이 있다. 구항 주변지역이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시범사업 대상지로 확정됐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사천시 관계 공무원과 해당 지역주민들이 합심해 1년 넘게 야심찬 준비를 다진 결과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도시들과 경쟁해야 했기에 속으론 긴장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탓에 ‘바다마실 삼천포愛 빠지다’ 도시재생사업 선정 소식은 그만큼 더 기쁘게 다가왔다.

하지만 누구 못지않게 삼천포항의 도시재생을 바라고 꿈꾸었으면서도 시원스레 웃음 짓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안재락 사천시도시재생총괄계획가(경상대 도시공학과 교수)다. 도시재생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경험으로 잘 아는 그였기에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각오만 다시 새길 뿐이었다. 3월 3일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 도시재생에 담긴 기본 뜻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천’이란 도시의 오랜 기억

1955년 부산에서 태어난 안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그리고 일본 교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동안 줄곧 건축학을 공부했다. 심지어 동아대 건축학과에선 4년간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2년 경상대 도시공학과에 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그의 전문분야는 어느덧 ‘도시설계’로 바뀌었다.

“도시설계란 도시를 공간적으로 다루는 학문이라 할 수 있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땅에 새로 들어설 건물들을 예상해 하나하나 컨트롤 하는 일이기도 하죠. 고도를 제한하고 경관을 조화롭게 하는 따위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도시재생도 도시설계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고요.”

그가 사천과 인연을 맺은 시기는 뜻밖에 빨리 찾아왔다. 경상대 임용 첫해에 사천시 통합 이전의 옛 삼천포시 도시계획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실안유원지 조성 얘기를 그때부터 들었던 것 같네요. (실안) 경관은 어느 정도 좋을지 몰라도 정확한 비전이 약하다는 생각에 잘 진행될 것 같진 않았죠. 3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완성을 못보고 있으니 예감이 맞은 건가요?(웃음) 또 한 가지 기억나는 건 삼천포에 유난히 상업지역이 많았다는 거예요. 상업지역이 많을수록 땅값도 오르고, 더 발전할 거란 생각이 퍼져 있었던 것 같은데, 위험한 생각이죠. 뭐든 적당해야 됩니다.”

1995년엔 비록 도시계획위원은 아니었지만 옛 사천군과 삼천포시의 통합 과정과 통합청사 위치 선정을 둘러싼 논란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봤던 그다. 당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통합청사를 지금 있는 용현에 두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에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무리 소규모라도 도심을 하나 만든다는 건 역량을 집중해야 해서 몹시 힘든 일이죠. 재정과 인구가 그리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사천읍과 삼천포 쪽에서 새 시청사 쪽에 역량을 쏟는 데 따른 희생을 감수해 줄 것인가가 의문이었던 겁니다. 저는 차라리 사천읍과 삼천포 쪽에 청사를 유지하면서 서로 역할 분담을 하는 쪽이 나았다고 생각해요.”

도시재생에 담긴 속뜻은?

안재락 교수는 자신이 도시재생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게 석사논문을 쓸 무렵부터라 했다. 오래된 건물을 허물기보다 보존하고 재활용하면서 경관적 요소로 응용하는 선진 사례를 접하면서다. 특히 도시재생의 과정에 주민들의 참여가 반듯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인근 진주시에서는 강남동 주거환경개선시범사업, 차없는거리 정비, 보행환경 개선, 고도제한 정비와 경관조례 제정 등에 힘을 보탰다. 하동군과 전남 광양시 도시재생사업에도 자문역을 맡아 왔다.

그런 그가 사천시의 도시재생을 위해 뛰어든 건 2016년 말부터다. 그해 9월에 있었던 사천시 도시재생전략계획 공청회 때 사회를 본 일이 계기가 되어 이후 사천시로부터 사천시도시재생총괄계획가 제안을 받고 수락했다. 현 사천시경관위원회 위원장임과 동시에 사천시 정책자문위원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이란 개념은 ‘도시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현상’에서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인구 유입이 도시외형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도시개발 개념이 먹히지 않자 대응책 차원에서 나온 거죠. 우리 주위를 봐도 도시의 어느 한쪽 개발로 다른 어딘가는 그 만큼 쇠퇴하고 있어요. 이는 도심공동화를 낳고 환경오염과 범죄 등 여러 도시문제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게 된 거죠.”

그는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점으로 “주민들의 공감과 참여”를 꼽았다. 도시가 쇠퇴하게 된 원인을 찾는 데서부터 발전 비전을 공유하는 일, 그리고 이를 위해 저마다 어떤 노력을 하고 실천할 것인지 약속하고 실천하는 일이 도시재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주민들의 참여와 실천이 그만큼 힘들기에 국가가 개입해 지원하는 것”이라며 “사천시가 그 출발선에 지금 딱 서 있다”고 말했다.

“물론 행정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의 참여를 잘 끌어내야 도시재생사업이 성공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해요. 그러려면 주민과 관계 전문가, 공무원 등이 서로 끊임없이 대화해야 하고 서로 보는 방향이 같도록 노력해야겠죠. 서두른다고 되는 게 아니니 길게 호흡해야죠.”

“도시재생, 시간 많이 드는 일”

도시재생의 일반론으로 시작한 대화는 점점 ‘사천 도시재생’ 쪽으로 옮겼다. 문득 삼천포 구항 일대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도시재생사업 대상으로 꼽힌 원동력이 뭘까 궁금했다.

“삼천포 구항이 가진 여건이 나쁘지 않음에도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잘 설명한 것 같아요. 구역 내에 공공 토지도 비교적 많아서 사업하기도 좋죠. 따라서 도시재생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것이란 기대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의 경험으로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종합하면 “삼천포 구항이 그만큼 매력적”이란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을까. 이는 곧 사업의 주된 방향이 될 수도 있음이다.

“작은 도시일수록 매력적인 장소나 건물, 공간이 있어야 해요. 단 몇 개만이라도. 그게 변화와 발전의 모티브가 됩니다. 결코 비싼 공간이 아닌, 좋은 공간을 만들어야 하죠. 제가 눈여겨 보고 있는 곳은 청널공원과 석회공장 등입니다. 작은 건물이라도 애정이 가도록 만들고 싶어요.”

청널공원은 예전에 동서공원 또는 풍차공원으로 불리던 곳으로, 여기서 삼천포 구항과 여러 섬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석회공장은 노산공원과 용궁수산시장 사이에 있는 낡은 건물로 최근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리모델링을 통해 사천시도시재생지원센터로 거듭날 예정이다.

삼천포 구항이 여러 매력을 지녔다 해도 안 교수는 미래를 낙관하지만은 않는다. 사업비가 투입될 때 반짝 했다가 지원이 끊기면 활기를 잃고 마는 도시재생사업 현장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고민도 깊다.

“리더가 혼자 끌고 가려 하면 안 돼요. 꾸준한 교육을 통해 주민들과 함께 가야죠. 그런데 그럴 시간이 주어질까 모르겠네요, 주변에서 워낙 기대가 커서. 도시가 쇠퇴한 시간만큼 재생을 위한 시간도 많이 든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삼천포 구항의 도시재생사업은 지난해 연말에 사업대상으로 선정된 뒤 지금은 도시재생사업선도지구 사업구역 지정을 위한 절차를 밟는 단계다. 오는 6월쯤 사업실행계획을 세워 국토부에 제출하고 승인이 나면 하반기에 본격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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